‘타산지석’, ‘거울효과’ 라는 말들은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 내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다, 돌아보아야 한다는 의미를 지닌 말들입니다. 지난 주간 어느 목사님과 교제하는 가운데 이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섬기고 있는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어떤 모습인지,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비단 우리 교회 뿐만 아니라 한인 이민교회의 현실을 돌아보고, 처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 감당해 가야 할, 극복해 가야 할 여러 가지 문제들을 점검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금 성장하고 있는 교회는 무엇 때문에 성장하는 것인지, 지금 잠자고 있는 교회는 무엇 때문에 잠자고 있는지, 문을 닫는 교회들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왜 많게는 80% 정도 되는 교회들이 여전히 미자립교회로 서 있는지 등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교회에 행하시는 일들, 교회에 원하시는 일들이 무엇인지를 확인해 갑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들을 보면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다짐해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 이웃 교회들을 살펴보며 우리 교회의 모습을 점검해 보게 됩니다. 물론 이 안에서 목회자로서의 제 모습을 돌아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고 있는지, 기도생활은 잘 하고 있는지, 성도들과의 만남들은 어떠한지, 교회의 다음을 위한 준비들은 잘 하고 있는지, 교회의 리더십은 어떠한지 등등등.
목회자인 저뿐 아니라 직분자들은 직분자로서의 자신의 모습, 각 사역팀을 이끌고 있는 리더들은 리더로서의 자신의 모습,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지체들은 한 공동체의 지체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 눈은 다른 사람들의 잘잘못은 잘 보입니다. 비판도 할 수 있고, 분석도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내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모든 것 이전에 하나님 앞에서의 내 모습을 확인하는 작업이 먼저 선행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내 모습,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내 삶이 교회에서, 가정에서,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지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경우 목사
지난 주 큰 아이가 훈련소에 입소했습니다. 훈련 강도가 어느 정도일지는 알 수 없으나 자식인지라 걱정이 되는 마음이 큽니다. 날마다 안전하게 건강하게 잘 마치고 수료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그리고 맡겨 놓고 간 차를 정리했습니다. 수료식에 맞추어 보내주어야 하기에 차 안을 정리합니다. 차 안에 있는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내가 잘하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마다 차를 관리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차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차는 이동 수단일 뿐이라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마다 물건을 놓아두는 것, 장식을 하는 것이 다릅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차를 보내야 하니 겉으로 보이는 것을 다 치우는 것이 맞다는 생각에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치웠습니다. 물론 저는 이렇게 깨끗하게 치워진 차를 좋아합니다. 큰 아이가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늘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 따르게 됩니다. 단순한 친분을 쌓기 위한 만남이 있고, 비즈니스를 위한 만남이 있고, 어떤 목적을 위한 만남들이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과 만나기도 하고, 익숙한 사람과 만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만남을 통해 좋은 관계를 이루어 가기 위해서는 지혜롭게 풀어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중심으로 대화를 이끌어 가는 사람이 있고, 다른 사람 중심으로 대화를 이끌어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남을 마친 이후에 더 기분이 좋은 사람이 있고, 만남을 후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만남을 잘 이용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말씀만으로도 능력을 베푸실 수 있지만 상대에 따라 다르게 대응하셨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침을 뱉어 진흙을 만들어 눈에 붙여 주셨습니다. 어떤 이는 만져 주시고, 어떤 이의 말은 끝까지 들어 주셨습니다. 상대의 필요를 아시고 그 필요에 맞추어 주셨습니다. 때로는 침묵하시고, 때로는 말씀하시고, 때로는 칭찬하시고, 때로는 책망하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만남을 허락하실 때는 모두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잘 깨달아야합니다. 새로운 만남은 우리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나눌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날마다 새롭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잘 따라 좋은 만남들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경우 목사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바람입니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기존 익숙한 삶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못 잔다고, 다른 지역에 오면 물 때문에 배앓이를 한다고, 낯선 사람들과는 이야기를 못 한다고 합니다. 익숙하다는 것은 이미 내 몸과 마음이 편안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편안한 삶은 안정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더 이상 발전은 없습니다.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마음이 있어야 더 나은 삶의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더 나은 삶이라는 것은 비단 경제적인 문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 우리 육신의 건강, 우리 삶의 환경, 나를 나 되게 하는 많은 것들에서 변화되는 삶을 의미합니다. 내 안에서의 변화일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을 통한 변화일수도 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교회에서, 가정에서 우리는 좀 더 나은 삶의 모습을 바랍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묵상합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위해 나를 사용하시려고 하시는가?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길이 어떤 길인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위해 내 자신의 삶을 늘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내 모습이 가장 정확하다는 것을 날마다 확인합니다. 설교 준비를 하면서 정삼각형의 신앙원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소명과 사명, 사랑과 은혜, 연단과 훈련 등 많은 단어들이 지나 온 삶의 모습을 통해 연상이 됩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이 얼마나 나의 삶에 간섭하고 계시는지가 궁금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고 있는지를 확인해 보았습니다.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하며, 찬양을 하며 가지게 되는 시간들은 극히 삶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시간들은 내 지식, 내 경험을 의지하며 내가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러나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기대해야 하는데, 그 기대 속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내게 기대를 허락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다시 한 번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실 때에야 비로소 기대라는 것이 내 마음에 스며들어옵니다. 그리고 이 기대는 내 삶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도 고개를 들어 주님을 바라봅니다.
이 경우 목사
하나님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질서 있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여름이 되어 에어컨을 틀게 될 때, 또는 겨울이 되어 히터를 틀게 될 때 한 가지 더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층 집에 살다보니 아래층과 위층의 온도 차이가 많습니다. 그래서 거실의 팬을 돌리는데 여름이 되면 바람의 방향을 아래에서 위로 향하게 하고, 겨울이 되면 바람의 방향을 위에서 아래로 향하게 합니다. 뜨거운 공기와 찬 공기가 잘 순환하도록 바꾸어줍니다. 뜨거운 공기가 위로 올라가면 그 빈 공간을 찬 공기가 메우게 됩니다.
우리 마음에 빈 공간이 생기게 되면 그 공간은 다른 것으로 메워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저를 목회의 길로 인도하신 동기가 이 빈 공간의 개념 때문이었습니다. 빈 공간은 반드시 무엇으로든 채워집니다. 사람들은 이 공간을 채우기 위해 많은 것을 이용합니다. 그것이 술이 될 수도 있고, 운동이 될 수도 있고, 도박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에게 이 빈 자리를 말씀으로 채우도록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이 더러운 귀신이 나간 사람의 예를 들어 주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 이 귀신이 이곳저곳 다니다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다시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가서 보니 그 집이 수리가 되고, 청소가 되어 깨끗하였다 합니다. 그래서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돌아가 살게 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실수하는 것은 집을 깨끗하게 수리하고 청소하면 끝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집은 비어 있으면 낡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용을 하지 않으면 먼지가 쌓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빈 자리를 채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어렵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에도 질량보존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여러 가지 사역을 위해 애쓰고, 수고합니다. 그러다보면 지쳐 탈진하게 되는데 이 빈자리를 채우지 않게 되면 실족하게 됩니다. 이 빈자리를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우리의 건강한 영적 삶을 위해 주의 은혜를 구합니다. 성령충만을 구합니다.
이 경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