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내린 비로 온 대지가 촉촉하게 젖어 들었습니다. 뿐만아니라 비가 오고 난 이후 겨울이라 생각이 들 만큼 많이 서늘해지기도 했습니다. 비가 온 후에 땅이 굳는다는 말을 합니다. 아마도 느슨해진 흙의 조직을 더욱 단단하게 다지게 되는 효과가 있어서 이런 말이 나온 줄 생각이 됩니다. 이 말은 어려운 일을 겪고 난 후에는 더욱 강해진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난히 비가 많이 왔던 날 교회 교육관의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집니다. 지난 번 수리한 부분에서 누수현상이 있었습니다. 날이 개기를 기다린 후에 보수 작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 또 많은 비가 내린 후에 살펴보니 흔적이 없습니다. 보수가 잘 된 것 같습니다. 마음이 흐믓합니다.
비가 온 이후에 교회 주변은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습니다. 제초제를 뿌린다고 하면서도 시간을 미루어 왔는데 비가 와서인지 더욱 무성하게 되었습니다. 집사님들이 뽑아내기도 하고, 자르기도해서 정리를 해 놓으셨습니다. 그래도 다시 올라온 잡초들이 있기에 제초제를 다시 뿌리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한 동안은 깨끗하게 정리가 될 것 같습니다.
비가 오면 물이 새고, 잡초가 올라옵니다. 당연합니다. 물이 새면 고치면 되고, 잡초가 올라오면 뽑거나 잘라내거나 약으로 죽이면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을 안 하면 건물이 관리가 되지 않겠지요.
우리는 늘 주님 앞에서 온전하기를 원하지만, 우리의 삶에는 늘 실수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죄를 범하게 되면 반드시 그에 따르는 삶의 모습들이 발견이 됩니다. 이러한 결과물들을 그대로 두면 나중에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됩니다. 이렇게 되기 전에 수리하고, 뽑고, 잘라내고, 약을 뿌려야 합니다. 죄의 근원까지 제거해야 깨끗한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미움, 시기, 질투, 욕심, 음란, 쾌락, 자기중심적인 생각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신실하게 진실하게 주님 앞에 바로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경우 목사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저희 교회 설립감사주일이기도 합니다. 교회의 시작은 19년 전 추수감사주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한 때가 11년 전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추수감사주일은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감사 이전에 교회에 대한 감사가 늘 먼저 되기 때문입니다.
올 한 해 제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이었는지, 감사의 제목들을 적어봅니다. 조금씩 교회가 자리를 잡아 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비전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영혼구원에 대한 열정도 주셨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함께 합니다. 교회를 위해 늘 기도하며 수고를 아끼지 않는 성도님들, 이들을 바라보며 기도로 후원해 주시는 연로하신 성도님들에서부터 열심히 충성하는 젊은 청년 성도님들에까지 사랑으로 하나되어 가는 성도의 모습에 감사를 드립니다. 새롭게 함께 섬기게 된 성도님들도 있습니다. 매주 방문하는 성도님들도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하는 수고들 잊지 않고 있습니다. 고군분투하시는 주일학교 선생님들, 교회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손길들, 성도님 한 사람 한 사람을 돌아보며 위로하는 성도님들, 주방이며, 창고며 어디에서든 성도님들의 손길을 느끼게 됩니다. 사랑하는 지체들이 하나되는 모습으로 교회의 내일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성도님들이 운영하는 비즈니스, 다니고 있는 직장 가운데 늘 형통한 은혜를 구합니다. 때로는 좋지 않은 소식들을 접하기도 합니다. 새롭게 이직을 해야 하는 상황도, 육신의 질병으로 인해 치료를 받아야 하는 지체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고 힘들어 하는 지체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함께 기도하며 나아갈 수 있다는 것에 또한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함께 한다는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언제나 힘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 가까이에서 혹은 멀리서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영적 강건함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많은 분들이 있음에 또한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의 제목들을 나열하려니까 계속해서 잊고 있었던 일들이 생각이 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추수감사주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한 나라이든 공동체이든, 교회이든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비상사항, 예외사항이 있을 수 있습니다. 급하다고 만들어 놓은 질서를 함부로 무너뜨리면 다시 회복하기가 어렵습니다.
최근 총회 노회, 또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시고, 그곳에서 우리로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만들어 놓으신 질서를 잘 지켜가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삶의 지혜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이 경우 목사
우리 사회가 무엇으로 유지되고 있을까요? 하나님은 이 넓은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고 계실까요? 법과 질서, 예외라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사회가 안정적이라는 것은 그 사회가 속한 구성원이 법과 질서를 잘 지킬 때 안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법을 지키지 않고, 질서를 무시하게 되면 혼란스러워질 뿐입니다.
그런데 누구를 위한 법이고, 누구를 위한 질서인지는 조금 다른 문제일 것 같습니다. 법과 질서가 진리가 되지는 못합니다. 때로는 가진 자의 법이고, 때로는 기득권자를 위한 질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법이 생겨나게 되고, 그 법을 이용해서 자기의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게 됩니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법이고, 사회에서 말하는 질서입니다.
철저하게 법을 지키고자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그 법을 따를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외조항이라는 것을 넣습니다. “단”, “다만”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예외조항에는 그 법에 해당하지 않는 특별한 경우의 예를 설명하게 됩니다. 이 예외조항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사람이 또 있습니다. 그만큼 완전하지 않음을 설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합니다. 하나님은 질서를 가지고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질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흘러갑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을 희생하시면서까지 죄 값을 치러 주셨습니다. 이것이 공의로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완전하지 않은 잣대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일을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판단과 결정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고 정죄하기 이전에 내 모습을 먼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언제나 우리 삶의 중심에 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자꾸만 비판하고 정죄하려 하는 제 모습을 보며 말씀의 중심에 서고자 다시 한번 제 자세를 고쳐잡아 봅니다.
이 경우 목사
‘부르신 곳에서 나는 예배하네 어떤 상황에도 나는 예배하네’라는 찬양을 들으며 오늘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제가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간행물로부터 온 글 가운데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는 게 많다
시간에겐 시간의 몫이, 타인에겐 타인의 몫이 있다. 내 머리로 저 너머까지 계산하고 파악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지 말자. 나는 모르는 게 아주 많다. 내가 어쩌지 못하는 일도 아주 많다. 내가 모든 기쁨과 행복을 알고 맛보고 누릴 순 없다. 고통과 불행은 내게도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불확실성을 제거하려 안달하지 말자. 끌어안자. 생의 우연을, 모호함을, 부서지기 쉬운 연약함을, 부조리함까지도. – 최혜진의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중에서 –
내 머리로 이해 안 되는 일이 정말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하고 말을 합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 내가 더 많이 배웠다는 이유, 내가 먼저 경험해 보았다는 이유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고도 하고 강제로 무엇인가를 하도록 합니다.
간혹 “내가 잘 하고 있나?”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목사로, 남편으로, 아버지로, 아들로, 친구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역할을 돌아보게 되면 부족함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겸손해서가 아니라 무엇 하나 만족할만한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내 위치가 사라지거나,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여전히 한 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아버지이고, 남편이고, 아들입니다.
나를 이 자리로 부르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 주신 역할입니다. 내가 하기 싫다고 해서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맞습니다. 하나님이 이제 되었다고 하실 때까지, 하나님이 그만하라 하실 때까지, 주어진 역할, 부르신 그대로 충성하리라 다짐하며 또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 경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