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싸인에서 멈추어 있는데 앞에 차가 먼저 온 것 같아 양보해 주었습니다. 앞의 차가 좌회전을 위해 제 앞을 지나가는데 운전하는 사람이 오른 쪽에 앉아 있었습니다. 내가 잘못 본 것은 아닌가 해서 다시 보았는데 오른쪽에 운전석이 있었습니다. 우체국의 배달차량이었습니다. 간혹 운전석에 사람이 없는 차도 보게 됩니다. 진짜로 있는지, 없는지 매번 다시 확인해 보게 됩니다. 내가 잘못 본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언제부턴가 건망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면 다시 기억이 나는 것을 보면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내가 거라지 도어를 열었는지 닫았는지, 가스 밸브를 잠갔는지, 차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누군가와 나눈 대화조차 잊어버리게 되어 낭패를 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으면 대화 내용을 바로 바로 적어 놓으려고 합니다만 이것마저 놓치고 나면 실수를 하고 맙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왜 제게 건망증을 주셨는지를 생각해봅니다. 무엇 때문에 건망증이 생기는 것일까요? 의학적인 지식은 없습니다. 다만 건망증의 장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어느 논문에서는 망각이 우수한 두뇌능력의 증거라고까지 말을 합니다. 새로운 정보가 이전의 기억을 덮어버림으로 매번 결정할 때마다 우리의 기억을 새로운 정보로 재구성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잘못된 기억, 낡은 정보로 결정을 하는게 아니라, 새로운 정보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도 하나의 장점이 될 수 있겠지요. 우리 구조가 컴퓨터와 같이 기억 메모리에 있는 것을 꺼내어 쓰는 것이라면 말입니다.
저는 제 건망증의 장점으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새겨듣게 되었습니다. 내 주장을 내려놓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다툼이 줄어듭니다. 내가 직접 눈으로 보고, 들은 것, 경험한 것조차 지금 변화된 상황에서는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무슨 일이든, 누구와든 편견없이 대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요? 물론 변하지 않는 진리, 예수그리스도와 복음은 제외입니다.
이 경우 목사
“TMI”라는 말은 ‘Too Much Information’의 약자로 너무 많은 정보라는 말인데,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한 너무 많은 정보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내 정보 뿐만 아니라 나 또한 다른 사람의 정보 알기를 원하지 않을 때 사용하기도 합니다. 어느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관계는 “TMI”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정말 공감이 되는 말입니다. 어느 집회 강사 목사님이 성도와 좋은 관계를 맺으려면 짜장면을 함께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두 같은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 무엇을 입든, 무엇을 먹든 알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그리고 내 삶의 모습 또한 다른 사람이 알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어떤 때에는 오지랖이 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피곤해지기도 합니다. 서로 오해를 사기도 하고, 다툼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 낫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 편하기는 한데, 그 이상의 관계를 이어가기는 어렵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많은 궁금증을 유발합니다. 오늘은 무엇을 먹었을까? 어디를 갔을까? 몸은 괜찮은가? 오늘 기분은 어떤가? 그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조금씩 그 사람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더욱 깊은 관계를 맺어갈 수 있습니다. 성도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이고, 예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고백을 하면서도 예수님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거짓 사랑이 됩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예수님에 대해 궁금해져야 합니다. 가능한 많이 예수님에 대해 알고 싶어집니다. 일반적인 것은 물론이고, 지극히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더욱 가까워지려고 합니다. 찬송과 기도로,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갑니다. 예수님이 지금의 내 모습을 좋아하실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궁금증이 기대감으로, 기대가 믿음으로 자라갑니다.
이 경우 목사
예수님의 사람 제자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훈련 내용 가운데 한 목사님의 간증이 있습니다. 이 목사님이 ‘무엇이 거룩한 것인가?’ 주님에게 물었습니다. 주님은 “혼자 있을 때 주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곧이어 교회 성장을 위해 기도하면서 “주여 우리 교회는 몇 명의 성도를 목표로 삼아야 합니까?” 물었더니 “내가 원하는 것은 네가 혼자 있을 때 나를 바라보는 목사가 되는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셨다고 합니다.
이 간증을 보면서 처음 M.Div 공부하던 시절이 생각이 났습니다. 피닉스에서 신학교가 있는 엘에이 인근 세리토스까지 매주 다녔었습니다. 처음에는 비행기를 타고 다녔지만 911 이후로 차를 이용해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약 5시간 반 정도 걸리는 운전하는 시간은 오롯이 저 혼자만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제 기억 속에 이 시간은 부흥회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큰 소리로 찬양을 하기도 했고, 흥분하며 말씀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속죄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때로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 차가 흔들릴 정도로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감격에 벅차던 시간시간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교회를 향하던 때였습니다. 옆으로 지나가는 수많은 차들을 보면서 도대체 이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이른 시간에 저리도 바쁘게 움직이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학교를 가는 사람도 있겠고, 운동을 하러 가는 사람도 있겠고, 일을 위해 출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면서 교회를 향하는 내 모습을 또한 생각해 봅니다. “저마다 이 시간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오늘도 주님은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실지 궁금해 합니다. 오늘도 주님은 내 삶을 어떻게 인도하실지 궁금합니다. 매 시간마다,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하고, 기도할 때마다 내 입술을 주관해 주시고, 내 갈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임재를 경험하며 지내는 행복한 하루를 기대합니다.
이 경우 목사
지난 주간부터 예수님의 사람 제자훈련을 시작하였습니다. 제자훈련을 준비하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과연 우리들이 무엇에 관심을 두고 살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항상 기쁘고, 감사하고, 기도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산다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 말과 행동, 삶의 방향등이 얼마나 예수님을 향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평생을 신앙생활 해 오면서 수많은 삶의 굴곡을 지나면서도 꿋꿋하게 지켜온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를 인도해 주셨고, 지켜주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신앙고백을 하는 것을 지켜보며 도전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 삶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믿고 있건, 믿지 않고 있건, 내가 약속을 지키건, 지키지 않고 있던 간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여전히 나와 함께 하심을 깨닫게 됩니다.
제자훈련을 준비하며 책을 지은 저자의 강의 내용을 듣습니다. 그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살기는 세상 사람들처럼 살면서 여전히 세상이 좋고, 세상의 기대를 다 가지고 살면서 구원받지 않은 사람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면서 그래도 나는 구원을 받았을 것이라고 믿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사는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보다 하며 사는 거에요.”
우리의 삶의 기준을 잘못 잡으면 안 됩니다. 우리의 기준은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을 보고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연약하고 부족합니다. 그 약함을 강하게 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제자훈련을 통해 그리고 매주 전해 드리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도, 공동체로 자라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경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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