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교회가 이번에 노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노회 소속 목사님들이 가장 많이 참석하는 노회가 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또 한 분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한국 기독교보 기자 되시는 분이 저희 교회를 취재하기 위해 방문을 희망하셨습니다. 한국에서 미국 이민교회가 어떻게 세워지는지 기획기사를 준비하고 계신다고 하시며 몇 가지 질문지를 먼저 주셨습니다. 그 질문지에 답을 달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비전과 사명, 교회가 중점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역 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주 교회 대청소를 위해 관리사역팀이 모였는데 그 모임에서 각자의 역할을 살피며 각자의 위치에서 할 일들을 생각하는 모습들이 참 좋게 보였습니다.
교회는 어느 한 사람에 의해 움직이지 않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각 지체들이 한 몸을 이루며 세워 나가게 됩니다. 교회의 각 부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세워져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리더로, 어떤 사람은 팔로워로 서게 됩니다. 지난 관리사역팀을 보면 팀장이 리더이고 팀원들이 있지만, 팀원들은 또한 각각의 사역팀 리더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리더로, 때로는 팔로워로 사역을 위해 섬기게 됩니다. 팀원들은 팀장을 존중해 주고, 팀장은 팀원들의 사역을 위해 많은 의견을 나누게 됩니다. 팀장이라서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팀원들이 팀장으로 세워주며 권위를 세우게 됩니다. 잘 따르는 사람들이 있을 때 그 사역팀이 건강하게 성장해 갈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조금씩 조금 씩 사역의 틀을 세워 나가려고 합니다. 큰 교회나 작은 교회나 해야 할 일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작은 교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고 하며 아무 것도 하지 않게 되면 앞으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교회가 될 뿐입니다. 하나씩 하나 씩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명을 위해 수고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 교회의 지경을 넓혀 달라고 기도합니다. 내 중심에서 다른 사람을 향해, 내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사랑하며 섬기며 나누는 교회의 건강한 모습을 기대합니다.
이 경우 목사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종이 울리고 닭이 울어도 내 눈에는 오직 밤 이었소. 우리가 처음 만난 그때는 차가운 새벽 이었소. 주님 맘속에 사랑 있음을 나는 느낄 수가 있었소.......
중학교 다닐 때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실로암”이라는 복음성가는 수련회에서 경험한 그 많은 성령체험들을 기억하게 하였고, 매 예배 때 부를 때에는 온 힘을 다해 부를 수 있는 복음성가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어린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밤새 나무 기둥 붙잡고 기도하며 맞이했던 새벽, 어린 저에게 무엇이 그리 갈급 했던지 소리소리 지르며 부르짖었던 때에 만나 주신 주님을 너무나 잘 표현했던 곡이었습니다.
이 복음성가는 아직도 논산 훈련소의 최고의 히트곡이 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당시 곡 리듬이 복음성가라고 하기보다 대중가요의 고고리듬에 더 가깝게 불렀었기에 많은 어른들의 염려를 가져오기도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복음 성가들 가운데 오늘까지 불려지는 몇 안 되는 곡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때로는 유치한 박자와 리듬의 곡이지만 마음에 깊은 감동을 줄 때도 있습니다. 매일 새로운 찬양들을 찾아 들을 때에는 익숙하지 않은 리듬 때문에 따라하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 은혜로운 찬양의 악보를 프린트해 놓고 열심히 따라 부르며 새로운 찬양을 익히기도 합니다. 새로운 찬양을 배우는 가운데 주시는 은혜가 또 엄청납니다.
우리가 찬양을 드리는 데는 아무런 제약이 없습니다. 오래된 찬양이든, 새로운 찬양이든, 찬송가든 우리의 마음과 정성이 가득한 찬양은 분명 하나님도 기쁘게 받으시리라 믿습니다. 분명한 것은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갈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할 때, 찬양은 우리의 길잡이가 되어 주고, 우리의 위로가 되어 주고, 우리의 능력이 되어 줍니다.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매 시간 시간, 매일매일 우리 교회에서, 성도님의 가정에서 찬양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양을 통해 지치고 힘든 영혼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위로하심 가운데 거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 경우 목사
성경에는 황금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마태복음 7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대접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고,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칭찬을 듣고 싶지, 악담을 듣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다른 사람 칭찬을 하고 있는지, 악담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좋지 않은 말을 할 때가 더 많지는 않은지요.
내가 속한 공동체가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 또한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가족 공동체, 교회 공동체, 민족 공동체 등 내가 속한 공동체가 인정을 받고 부흥하는 것을 누구나 원하고 있습니다. 그 기대가 큰 때문인지 이것저것 생각도 많고 말도 많습니다. 모두가 잘 되라고 하는 말들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듣는 자녀들은 잔소리라 하고, 이 말을 듣는 지체들은 기분이 상하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모두가 잘 되라고 하는 말인데, 모두가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하는 말인데 말입니다.
자녀들에게는 착하게 살라. 정직하게 살라. 하나님만을 믿으며 살아가라 하지만 내 자신 삶의 모범을 보이지 못합니다. 이런 저런 좋은 이야기 많이 하지만 정작 그 이야기 가운데 내가 들어가 있지를 못합니다. 다른 누군가가 그렇게 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면서도 내가 나라 사랑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말 뿐인 사랑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 탓 할 것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내가 먼저 시작하면 되고, 내가 착하게 살면 되고, 내가 열심히, 부지런히 살면 됩니다. 내가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게 되면, 내 삶의 모습들은 자연스럽게 내 자녀들에게, 지체들에게, 공동체에 전해지게 됩니다. 한 사람의 헌신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한 사람의 결단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내 존재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지, 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시험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가족 안에서, 교회 안에서 내가 원하는 그 모습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시작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경우 목사
무더운 여름이 이제 거의 지나가는 듯합니다. 어제 밤에는 초저녁부터 천둥과 번개가 먼지바람과 더불어 온 피닉스를 덮은 듯합니다. 얼마나 세게 바람이 불던지 집, 나무 등이 부서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들 삶은 늘 걱정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돈 걱정, 건강 걱정, 자식 걱정, 부모 걱정, 교회 걱정 등. 단순히 걱정할 일 뿐만 아니라 좋지 않은 일들은 끊임없이 찾아옵니다. 지난 주간 한 장례식을 집례 했습니다.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는데 관 안에 누운 모습은 얼마나 평안했던지. 죽음을 잠자는 것이라 하는데, 한 시편의 저자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아마도 모든 짐을 내려놓는다는 의미가 더 큰 것 같습니다. 또한 시편 저자의 이 말씀은 집을 세우고, 성을 지키는 일을 하지 않고 잠을 자는 동안에도 하나님께서 일하신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의미로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가장 심각한 성인병이 무엇일까요? 많은 질병들 가운데 저는 불면증도 그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 없습니다. 잠을 자지 못하게 되면 다음날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 힘이 듭니다. 잠을 자면서 충분히 회복되어야 정신이든, 육체든 건강하게 됩니다. 왜 잠을 잘 수 없을까요? 여러 가지 환경적인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스트레스 때문일 것입니다. 걱정과 염려로 가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에, 우리가 모든 것 내려놓고 쉬는 동안에 그 일을 이루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으로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이 우리를 잠못 이루게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안고 잠을 못 이루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함께 하신 하나님을 생각해봅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그런데요 제 몸은 아직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몸과 마음, 마음과 생각을 우리 하나님이 지켜 주시리라 믿습니다.
이 경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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