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애정 결핍, 사랑이 그리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것보다 사랑받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칭찬하는 것보다 칭찬받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누구에게든 사랑받고,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우리들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실수할 때도 있고, 잘못할 때도 있습니다. 잘해야 칭찬을 하지요. 잘못했는데 잘못을 인정하게 되면 칭찬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니까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평하고, 불만합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잘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차라리 벽을 만들고 사는 것이 낫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외로운 삶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기에 감사합니다. 내가 한 사람의 목회자로 서 있다는 것에 또한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고, 내 잘못을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선 우리의 모습은 모두가 부족한 존재이고, 나약한 존재임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우리를 하나님이 사랑해 주시고, 다독여 주시고, 일으켜 주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시고,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고, 누군가 인정해 주길 바라고, 누군가 칭찬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의 위로면 충분합니다. 우리 주님이 인정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주님이 내 곁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삶입니다. 지치고 상한 심령들 가운데 우리 주님의 위로가 큰 힘이 되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이 경우 목사
하나님은 우리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때로는 위로하시고, 때로는 책망하시고, 때로는 인도하시고, 때로는 지켜주십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고, 찬송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실수하고, 잘못 판단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분별하지 못함이 아닌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방황하게 되고, 잘못 판단하게 되고, 분노하고, 실망하고, 낙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게 되면 우리의 마음에 평안함이 있습니다. 언제 무슨 일을 당하든지 여유를 가지고 접근할 수 있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방법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지금 당장은 화가 나는 일이 있을지라도, 지금 당장은 손해가 되는 일인 것 같지만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됩니다. 더 좋은 것으로 준비해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이심을 믿고 있음에도 조금만 힘이 들고, 어려움이 닥치면 낙심하고 실망하는 것이 연약한 우리들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에서, 교회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다음을 준비하십니다. 우리의 다음 일을 이미 시작하셨습니다. 그것도 가장 적당한 때에 일을 진행하십니다. 때론 막힘이 있고, 때로는 부족함이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가장 좋은 방법으로, 가장 적당한 때에, 가장 좋은 것으로 허락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이 경우 목사
지난 독립기념일에 디모데공동체(청년)는 리더 집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휴일에 교제하기 위함이었는데 식사를 팟럭으로 준비했습니다. 팟럭은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각자 한 가지의 음식을 만들어 가지고 와서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서로 무엇을 해 가지고 올 것인지를 의논하지 않고 각자가 준비할 수 있는 것을 준비해서 가지고 옵니다. 재미있는 것은 어떤 때에는 메인만 가득하고, 어떤 때에는 디저트만 가득할 수 있습니다. 이번 모임에는 메인부터 샐러드, 디저트까지 풍성하게 준비된 것을 보았습니다. 모두가 조금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준비해 와서 아주 풍성한 식탁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도 이런 팟럭을 준비하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찬양을 준비하고, 어떤 사람은 기도로 준비하고, 어떤 사람은 말씀으로 준비합니다. 어떤 사람은 식사를 준비하고, 어떤 사람은 간식을 준비하고, 어떤 사람은 아이들 가르칠 것을 준비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 주변을 돌아보며, 어떤 사람은 사람들을 안내합니다. 어떤 사람은 청소를 하고, 어떤 사람은 빈 자리를 의식해 의무감을 가지고 나오기도 합니다. 어떤 모양으로든 하나님을 향한, 교회를 향한 내 사랑의 표현이 됩니다. 감사의 표현이 됩니다. 이 모든 수고와 헌신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줄 믿습니다.
팟럭으로 준비된 식사를 할 때는 이것저것 빠지지 않고 다 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수고한 모든 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기도 합니다. 음료수 하나, 과일 하나가 빠져도 먹는 데는 불편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목마름을 위해, 누군가의 시원함을 위해, 누군가의 필요를 생각하며 준비한 손길을 생각해보면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무엇을 가지고 주님의 전에 오셨는지요. 하나님을 생각하고, 교회를 생각하고, 예배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지체를 생각하며 준비해 온 모든 것에 하나님이 기뻐하심은 물론이고 지체된 온 성도의 기쁨과 위로가 되는 줄 믿습니다.
이 경우 목사
가을, 겨울 철 감나무 끝에 달린 감을 동물들을 위해 따지 않는 관습이 있는데, 이렇게 남겨진 감을 까치밥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에는 추수할 때 다 걷지 말고 이삭을 떨구어 과부나 고아등 가난한 이들이 먹을 수 있도록 남겨놓으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다른 사람들을 살피고 도와주도록 하셨습니다. 특별히 살아갈 방법이 없었던 고아와 과부들을 돌보라고 하셨습니다. LA 다운타운에는 홈리스들이 몰려 텐트촌을 이루며 살아가는데 점점 그 숫자가 늘어난다고 합니다. 이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속히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저희 교회 주변에도 간혹 홈리스들이 잠을 청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원한 물이라도 한병 건네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 물을 들고 나오지만, 이들은 잠을 깬 것이 못마땅한 듯 하기도 합니다. 너무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것 아니냐 하기도 합니다.
제 사무실은 동쪽과 남쪽으로 창이 나 있습니다. 그래서 밖이 잘 보입니다. 그런데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아서 당황스런 일이 자주 발생합니다. 사무실 유리 창 밖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든지, 얼굴 화장을 고친다던지 말입니다. 엊그제 홈리스 한 사람이 교회를 지나다가 목이 말랐던 모양입니다. 교회 옆에 있는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아 가면서 먹음직하게 열려있었던 복숭아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저것 만져보더니 익은 것을 하나 따서 먹는데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요. 이 장면을 보면서 익은 복숭아 몇 개 정도는 남겨 놓아야 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마치 감나무 꼭대기에 있는 감은 따지 않고 까치밥으로 남겨놓는 것처럼 말입니다. 홈리스 한 사람이 직접 따 먹는 복숭아 한 개로 크게 기뻐하며 걸어가는 것을 보며 흐믓했습니다.
어떤 분이 그러셨어요. 아무 대책 없이 길 가에 있으니 열매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따먹으면 어떻게 하냐구요. 그런데 이것 또한 즐거운 일 아니겠습니까? 교회에서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또한 큰 즐거움입니다. 늘 우리 주변을 돌아보며 사랑하고 섬기고 나누는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경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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