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모여 텔레비전을 보게 될 때 리모콘을 누가 쥐고 있느냐에 따라 보는 프로그램이 달라집니다. 심할 경우에는 이로 인해 싸움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뉴스, 스포츠를 보고자 하는 아버지, 드라마를 보고자 하는 어머니, 가요 혹은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자 하는 자녀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납니다. 대부분은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평화를 유지하게 됩니다. 왜 서로 보고픈 것이 다를까요? 공감하는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죽도록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아픈 사람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늘 공부를 잘했던 사람은 공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을 잘 모릅니다. 금수저는 흙수저의 마음을 알 수가 없습니다.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사람은 종업원의 마음을 잘 모르고, 종업원은 오너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한국 남자들이 왜 그렇게 축구 이야기를 하는가? 한국 남자들이 왜 그렇게 열을 내고 군대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사람들이 왜 골프이야기를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를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내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 있고, 힘든 시간이었고,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이것들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이 큰 기쁨이 됩니다.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내가 알 수 있는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에게 빠져들게 되어 있습니다.
예닮 공동체 리더들과 함께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 가지 공감대는 형성이 되었습니다. 무엇이든 함께 하는 일들을 많이 하고자 하는 마음들이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함께 하려면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상당부분 공감할 수 있는 일들이어야 합니다. 만남을 통해 함께 기도하며 영적인 교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만남으로 인해 모두에게 기쁨과 즐거움이 되어야 합니다. 만남을 통해 유익이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공감하며 함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저는 ‘관심’이라는 말, ‘배려’라는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앞으로 많은 만남들을 준비합니다. 이 일들을 통해 한 지체로서 자라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의 만남들이 기대가 됩니다.
이 경우 목사
지난 주간 주중 새벽기도회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새벽기도 시간에 매일 읽어야 할 성경을 함께 읽고 그날의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고 차분히 주님 앞에 나아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한 시간들입니다.
처음 교회를 개척한 후에 상당 기간 혼자 새벽기도를 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교회 한 구석의 사무실에서 기도를 했지만 그 시간이 얼마나 힘이 되는 시간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더욱 새벽을 깨우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주중에 새벽기도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출근해야 하고, 학교에도 가야 합니다. 반드시 교회에 나와 기도해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새벽 첫 시간을 하나님께 기도하며 시작한다는 자체가 귀한 일입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제 마음 속에는 늘 교회에서 성도들과 함께하는 기도하는 새벽이 있었습니다.
아직 해 뜨기 전 어둠을 가르며 교회를 향할 때마다 제 귀에 속삭이는 주님의 음성이 제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굳건한 믿음은 오늘 내 앞에 펼쳐질 일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합니다. 그리고 함께 기도한다는 동역자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특별히 주중 새벽기도회 시간에 각 가정을 위한 중보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비록 새벽에 함께 하지 못하더라도 그날은 모든 성도가 한 가정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 되시고, 우리는 교회의 몸이라 합니다. 그래서 지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우리가 한 지체가 되었음에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족같은 교회를 꿈꾼다고 하면서도 한 식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있습니다. 다음에는 같이 식사 한번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그 가정에 허락하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는 마음, 더불어 우리가 한 가족이라는 마음을 조금은 더 가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새벽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며, 말씀을 읽고, 중보기도하고, 하나님께 좀 더 가까이 나가는 가운데 우리의 영성은 더욱 성장해 가리라 믿습니다. 새벽을 깨우리로다.
이 경우 목사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은 이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이러한 교회의 존재목적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인 이민 교회가 감당해야 할 일은 참 많습니다. 외로운 이민 생활에 위로가 되어야 하는 목적도 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분명 교회가 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구제도 해야하고, 봉사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심에 예배가 있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크게 기뻐하시는 일은 잃어버린 영혼들이 주님 품으로 돌아와 함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열정이 사라졌다는 말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인데 우리 안에 열정이 사라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거나, 깨닫지 못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저 열심히 봉사하고 수고하면 잘 하는 것이라 생각을 했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우리 섬김의 방향이 그리스도의 복음 전하는 일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교제하는 것도, 섬기는 것도, 모이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도록 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할 때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일, 복음 전하는 일에 힘을 쓰게 되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힘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열매를 보며 우리는 또 다른 열매를 향해 열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소금이라, 빛이라 하신 데는 우리로 세상에 영향을 끼치며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복음의 열정이 불같이 타오르는 우리 밸리한인장로교회를 기대합니다.
이 경우 목사
세상에 걱정이 참 많습니다. 같은 말에 두 가지 상반된 의미를 가지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생각 없이 산다’고 하면 이것저것 복잡한 것 생각하지 않고 삶이 단순해서 좋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고, 반대로 생각해 보지 않기 때문에 생겨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한 비아냥거림의 의미가 있습니다. 말하는 사람의 상태, 어감에 따라 그 말이 다른 의미로 받아 들여지는 것도 경험합니다. 특별히 한국어와 영어가 함께 쓰이고 있는 한인 이민 사회에서는 더욱 그 차이가 큽니다. 나는 특별한 의미를 담지 않고 한 말인데, 듣는 사람은 굉장히 기분 나쁘게 듣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여러 상황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그 마음입니다. 그 마음에 품고 있는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속에 정말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있다면 ‘당신이 밉다’고 말을 해도 사랑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그렇지만 마음에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있지 않다면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을 해도 사랑으로 느끼지 못합니다.
내 마음에 무엇을 품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긍정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사람이 있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게 좋은 일보다 안 좋은 일이 더 많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볼 때 좋고, 행복했던 시간은 잠깐이고,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들이 대부분인 것만 같습니다. 그러니 모든 일을 부정적으로 보게 됩니다. 일단 의심부터 하고 봅니다. 나에게 조금 친절하게 다가오는 사람을 대할 때도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됩니다. 선입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각자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보니 내 경험, 내 지식에 비추어 볼 때 이런저런 사람을 경계하게 됩니다. 우리 안에 상처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마음, 한 성령으로 하나 되기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하나되기 위해 힘쓰고,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되어 하나님이 성도를 향해 주시는 마음, 하나님이 교회를 향해 주시는 마음을 품고 그 마음을 가지고 행하는 성도의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경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