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크게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내 모습은 그대로인데 이런 변화된 세상이 나를 두렵게 합니다. 로봇이 공장에서 활용된다는 소식은 오래전부터 듣고 있었지만, 이제는 전 공정이 로봇화 된다는 소식이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다가옵니다. 로봇이 조립을 하면 실수가 줄어 제품은 좋아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일자리가 점점 줄 것 같아 걱정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로봇이 음식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되면서 직원수를 많이 줄여가고 있다는 말도 듣습니다.
이런 변화된 세상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마냥 두렵습니다. 그런데 두렵다고 가만히 있으려니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합니다. 처음 셀폰을 대하게 될 때도 그랬습니다. 셀폰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잘 모르니까 전화거는 용도로 밖에 사용하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인터넷 검색을 하고,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하게 되고, 노트며, 이메일이며 어디서든 내 필요한 것을 찾아볼 수 있어 좋게 되었습니다. 정작 폰에 깔려 있는 어플리케이션의 십분의 일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나름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두려움이 등장합니다.
AI(인공지능). 내년이면 저희 교회가 속한 재미고신 중부노회가 세워진지 20주년이 됩니다. 교단은 40년이 넘어가지만 중부노회는 20년 전에 서부노회와 중남부노회에서 분립하여 시작하였습니다. 20년의 노회 역사를 정리하는 데 AI를 사용해서 자료를 정리하니 얼마나 정확하고 빠르게 정리가 되는지 모릅니다. AI를 잘 활용하시는 목사님이 노회의 각종 업무를 자동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목사님과 수년간 교제를 나누며 AI에 대해 도전해 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시작부터 제게 다가오는 것은 두려움이었습니다. 용어조차 낯설어서 이해가 힘들기도 합니다. 무엇을 사용해야할지부터,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배워보려고 합니다.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는 기쁨이 있습니다. 두려움이 기쁨으로 바뀌게 되면서 제 삶에 큰 변화가 오리라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미지에 대한 세계의 두려움과 조금씩 알아가게 되는 기쁨은 늘 함께 합니다. 내 경험, 나이, 지식과는 상관없이 이 두려움과 기쁨을 함께 느끼며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한단계 전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경우 목사
지난 노회 기간 동안에 목회자 수련회가 있었습니다. 노회를 마치고 로키산맥 위에 자리잡은 수양관으로 옮겨 목회자 수련회를 진행하면서 많은 목사님들이 위로를 받고, 도전을 받는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그 가운데 한 분이 노회를 마친 후 장문의 글을 적어 보내오셨습니다. 그 내용 가운데 일부를 함께 합니다.
Retreat전, 나는 한 가지 질문을 반복해 기도하고 있었다.
보기 좋은 예배당을 세우고, 필요에 따라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복음이신 그리스도를 전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영혼의 구원을 위해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다. 재림의 소망을 품은 공동체가 시간과 장소를 넘어 존재하는 것, 교회는 특별한 이유 없이도 이렇게 단순해야 한다.
최근에는 다른 교회 성도들이 교회를 옮길 목적으로 방문하고 싶다는 요청도 있었지만 모두 거절해 왔다. 교회 이동에 지나치게 적극적인 성도들의 전화는 받지 않기도 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듣지 못한 사람, 그리스도를 아직 모르는 사람을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지만 그것이 그분이 원하는 일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 자신이 지쳐 가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지?
Retreat은 잘 준비되었고, 준비한 형제들을 통해 큰 은혜를 입었다. 언제나 그렇듯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아브라함과 모세, 베드로, 또 바울과 디모데를 사용하셨듯이 이번에도 그러하셨다. 성경이 그렇다. 하나님의 이야기는 늘 사람을 통해 들려오고, 하나님의 일도 오래 참은 사람을 통해 드러난다. 내가 애원하며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그분의 때에 말씀하실 것이고, 나는 다만 인내하며 살아내면 되는 일이었다. ......
교회를 세우기 위해 준비하시는 목사님의 글에는 목회자로서의 소명, 인내,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그에 합당한 능력도 더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이 부르신 곳에서, 하나님이 부르신 목적에 맞게 살아가는 삶이 믿음의 삶이라 생각됩니다. 충성하면 그 열매는 하나님이 허락하십니다. 그때가 어느 때일지, 얼마만큼의 열매가 맺혀질지 궁금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고,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충성할 뿐임을 다시 한 번 마음 깊숙이 새겨 봅니다.
이 경우 목사
저에게 한 장의 하얀 도화지를 주고 그림을 그리라고 한다면 무엇을 그릴 수 있을까요? 제가 목회를 시작할 때, 아무것도 그려 있지 않은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림을 그리는 제가 실력이 없어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아름다운 교회를 그리고 싶었지만 조그마한 창문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니 생각하던 아름다운 모습이 보이지 않고 오랫동안 완성되지 못한 그림을 쳐다보고만 있습니다.
치과 치료를 위해 기다리고 있던 중 텔레비전을 통해 밥 로스라는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팔레트 위에 물감을 마구 섞더니 하얀 캔버스 위에 붓을 이곳 저곳에 마구마구 찍습니다. 그리고 그림 그리는 칼로 이리저리 그어대니 산이 나오고, 나무가 되고, 호수가 보입니다. 이상하게 뭉쳐 있던 것이 그림 그리는 칼을 이리 대고 저리 대니 커다란 나무가 되어 호숫가에 등장합니다. 또 물감을 섞어 이리저리 죽 그으니까 집이 한 채가 서고, 구름이 생겨납니다. 멋있는 풍경화가 완성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신기한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켜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실 때에 말씀으로 지으셨습니다. 말씀으로 지으셨지만 미리 그림을 그려 놓으시지 않았을까요? 밥 로스라는 작가가 하얀 캔버스에 물감을 섞어 붓을 사용하든, 칼을 사용하든 캔버스에 색을 입힐 때에는 미리 생각을 해 놓지 않았을까요? 다만 캔버스에 담겨지지만 않았을 뿐, 머릿속에는 이미 아름다운 풍경화가 자리 잡고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비록 그림을 그리는 솜씨가 없어서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도화지에 표현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제가 직접 그리지 않아도 그 생각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습니다. AI를 이용해서 제가 설명을 잘해 주면 대신 그림을 그려 주기도 한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합니다. 그런데 AI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내가 머릿속에 그린 그림에 대한 설명을 잘해 주어야 생각 속의 그림이 현실의 그림과 일치하게 됩니다. 설명을 잘못하면 엉뚱하게 그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을 잘 설명할 수 있도록 내 머릿속에 아름다운 그림을 먼저 그려 놓으려 합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님들과 이 그림을 함께 그리며 나눌 수 있도록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강한 교회로 자라갈 수 있기를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이 경우 목사
교회 사무실에서 밖을 내다보면 재미있는 일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요즘에는 도어대시 배달로봇이 계속해서 교회 앞을 왔다 갔다 합니다. 몇 달에 걸친 시험 운행이 끝났는가 했는데 다시 시작하는 것을 보니 운영상 무슨 문제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아래쪽 중학교 학생들이 지나가면서 사무실 창 앞에서 옷매무새를 고치기도 하고, 자신의 얼굴을 보며 웃기도 합니다. 때로는 낯선 차들이 사무실 앞에 주차를 하는 것을 보고 누가 왔는가 했는데, 움직임이 없어서 나가 보면 전화 통화를 하는 듯한 차들도 많이 있습니다. 어느 날 수상해 보이는 차가 교회 앞에 섰습니다.
아주 고급스러운 SUV 차량이었습니다. 주차를 하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멈추어 서더니 어린 남자아이가 차에서 내립니다. 차 안에서는 엄마로 보이는 듯한 여자가 무어라 말을 하고, 아이가 두리번거립니다. 그러더니 교회 앞 화단에다 오줌을 누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놀라서 뛰어나갈까 하다가 아이가 부끄러울까 봐 그냥 두었습니다.
제가 놀란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공중도덕의 개념. 저희 교회 앞길이 그래도 작은 길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제법 차도 많이 다니는 거리입니다. 그런데 대로변 나무 밑에서 소변을 본다는 것은 개념이 없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 하나 아이에게 어떤 영향이 가는지를 이 엄마는 생각하지 않았던 듯합니다. 아이가 두리번 두리번 거리며 멈칫 멈칫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부끄럽겠지요, 급하지요, 엄마는 재촉하지요. 옆에 타겟도 있고, 가까운 곳에 맥도널드도 있는데 왜 길거리에서 일을 보도록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아이가 엄마에게서 무엇을 배웠을까요.
주일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의 삶을 거룩한 제물로 드려야 한다는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일상은 그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말하는 방법도 달라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그 모습에서 사랑이 흘러나와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교회 안에서는 물론,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의 바른 본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 삶의 모습들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아름다운 모습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경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