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토요일 교회 거라지 세일이 있었습니다. 정성껏 모아주신 물건들로 가득했고, 열심히 진열하고, 판매하는 모습들을 보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일을 위해 애쓰고 수고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거라지 세일을 준비하는 가운데 한국 대통령 파면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비상 게엄으로 인해 나라가 혼란스러웠던 때와는 또 다른 당혹감이 들었습니다. 리더의 부재가 가져오는 빈 자리가 얼마나 큰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속히 다음 대통령이 선출되어 나라가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요즘 새벽기도를 하면서 매일성경읽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어느 지도자가 왕이 되는가에 따라 하나님에게 향한 백성들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이 서게 되면 온 백성이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왕이 서게 되면 백성들 또한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백성들이 생각이 없어서 왕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한 사람의 리더가 어떻게 이끄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은 조금씩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한 때는 리더 한 사람이 무엇이 그리 중요한가 생각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영향력에 따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생각해보면 누구를 따르는 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이끄는 지도자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앞장서 무리를 이끌어 가는 리더가 있고, 뒤에서 열심히 밀면서 이끌어 가는 리더가 있습니다. 뛰어난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이든,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하며 섬기는 리더이든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에 진정한 리더로 설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비즈니스 가운데, 교회에서, 나라와 민족 가운데 세우신 리더를 위해 기도합니다.
이 경우 목사
무엇인가 목표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에는 참 기쁨이 있습니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뜻대로 살아가는 길이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장애물들이 앞을 가로막기도 합니다. 주변 상황과 환경으로 인해 돌아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거대한 압박으로 두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이 길이 내게 주어진 길, 내가 가야할 길인데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나아갈 길로 인도하십니다. 나아갈 수 있도록 힘도 주시고, 지혜도 주십니다.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다만 하나님만 바라며, 하나님만 믿으며, 하나님만 의지하며 나아가도록 하십니다.
이번 주말에 교회 거라지 세일을 합니다. 거라지 세일을 하는 목적은 에어컨 수리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재정을 마련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거라지 세일의 근본적인 목적은 집 정리입니다. 생활하다보면 집 살림이 늘게 되어 있습니다. 가구도 바꾸고 싶고, 주방용품들도 바꾸고 싶습니다. 필요해서 샀지만 거라지에 그대로 몇 년을 두고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어떤 제품들은 포장을 뜯지도 않은 채 거라지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버리기는 아깝고, 가지고 있자니 공간을 많이 차지합니다. 이때 거라지 세일이라는 기회를 만들어 집정리를 하게 되니 얼마나 좋은 지 모릅니다. 물론 빈 거라지 공간이 금방 채워질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라지의 빈 공간을 보며 흐믓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새로운 것으로 채워지리라는 기대감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고 가는 짐이 너무 많습니다. 여러 가지 걱정과 염려가 가득하기도 합니다. 저는 간혹 ‘홀가분하다’라는 말을 생각해봅니다. 마음의 짐을 덜었을 때 하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가기 위해 때로는 마음의 짐, 육신의 짐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홀가분하게 새로운 마음으로 주님을 향해 나아가는 그 길에 우리 주님이 언제나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이 경우 목사
지난 주간 에반겔리아 대학의 채플에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줌으로 하는 채플 시간이 조금 어색하기는 했지만 오래간만에 학교 분위기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기도하고, 찬양하고, 설교를 듣는 학생들, 교수님들, 직원들에게서 예배에 참여하는 순수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놀란 부분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화면에 보이는 캠퍼스가 캘리포니아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아프리카의 가나에서, 아시아의 필리핀, 인도네시아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 개인적으로 참여하시는 분들은 한국에서, 홍콩에서 참여하고 계시는 분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들도 미국의 동부, 중부, 서부의 여러 지역에서 함께 하고 계셨습니다. 이렇게 여러 민족 출신들이 함께 예배를 드린다는 것에 큰 감동이 있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펜데믹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줌을 이용한 화상 회의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 경우에도 많으면 매주, 한 달에 한두번은 줌을 통해 각종 회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각각 시간대는 다르지만, 화면을 통해 얼굴을 보며 회의를 하게 되었다는 것은 이 시대의 가장 큰 변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전에는 화상 회의는 다국적 기업의 임원회의 혹은 정보기관의 회의등 영화를 통해서만 볼 수 있었던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평범한 회사원, 학교, 친구들 간에도 자유로운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을 봅니다.
운전을 하고 가다보면 운전석에 사람이 없는 차를 자주 보게 됩니다. 주차하기 어려운 파킹랏에서는 차가 스스로 주차를 해 주기도 합니다. 인공지능의 발달이 이런 환경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어폰을 끼기만 하면 다른 나라의 말을 우리 말처럼 들을 수 있습니다. 셀폰을 갖대 대기만 하면 한국말로 번역이 되어 볼 수 있습니다. 참 놀라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말씀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는 삶은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다양한 변화속에서 바른 믿음으로 살아가는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경우 목사
교회 사무실은 항상 조용합니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간혹 들릴 뿐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면 다른 소리들이 들립니다. 교회 앞을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가 들리고, 멀리 공사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며칠 전에는 천둥소리가 들려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집에 가려고 교회를 나서는데 비가 많이 오고 있었습니다. 교회 안과 밖이 완전 다른 세상입니다.
그런데 무엇인가를 위해 집중하고 있을 때는 다른 소리들이 하나도 들리지 않습니다. 소리가 들리기는 하지만 제가 의식을 하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어릴적 이어폰을 끼고 공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외부의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사가 없는 클래식 곡을 많이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어폰을 끼고 공부를 하게 되면 클래식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소리가 소리를 먹었다고나 할까요?
요즘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분별하기도 어렵습니다. 우리의 귀를 어디로 열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소견대로 옳은 대로 말합니다.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하는 말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말들을 배제하며 살아가지는 못합니다. 관심이 가기도 하고,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이 되는 말들이기도 합니다.
저는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을 생각합니다. 하늘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단순한 소리입니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다른 소리가 아닌 음성으로 들렸습니다. 저는 이 사실에 주목합니다. 많은 소리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새벽시간에 강단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가만히 묵상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침묵합니다. 내 귀에 들려지는 많은 소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듣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시기를 구합니다.
이 경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