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에서 교회를 가려고 집을 나서게 되면 보게 되는 지붕이 무너진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 마당이 넓고 아름다운 교회였는데 언제부턴가 지붕이 무너진 채로 흉흉하게 서 있는 모습이 보기가 좋지 않습니다. 처음에 볼 때는 어쩌다가 지붕이 무너졌을까? 사람은 다치지 않았을까? 빨리 고쳐졌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을 하며 지나다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전혀 바뀌지 않는 교회 모습에 다소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사고 수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인지, 보험회사와 협상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도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붕은 골격만 남아 있고, 무너지지 않은 옆 벽만 형태를 유지하고 서 있습니다.
이렇게 실질적으로 건물이 무너진 교회는 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너진 건물은 금방 다시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났음에도 다시 지어지지 않는 교회는 분명 문제가 있는 듯 보입니다.
교회 건물도 그렇지만, 우리는 많은 무너진 교회들을 지켜보게 됩니다. 수천명이 넘는 성도들이 모여 있던 교회가 하루아침에 아침에 수십명으로 줄어드는 것도 보았습니다. 부흥하는 교회로 소문난 교회가 어느새 작은 교회로 줄어 있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물론 이런저런 이유로 교회 문을 닫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래전 한국의 삼풍 백화점이 무너진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리스도인 청년으로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백화점 건물을 무너뜨리셨을까?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셔야만 했을까 고민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사회에 주시는 분명한 메시지를 찾아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지붕이 무너진 교회가 바로 일어서지 못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다르게 보입니다. 지붕이 무너지면서 그 역할을 감당하던 성도님들도 함께 무너진 듯합니다. 교회의 성도님들이 무너지면 회복하기가 어렵습니다. 교회의 기초가 흔들리는 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교회는 유기적인 공동체입니다. 각각 그 역할을 감당하는 성도님들로 세워진 곳이 교회입니다. 어떤 사람은 손의 역할을, 어떤 사람은 발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눈으로 보고, 어떤 사람은 입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각각 역할을 잘 감당할 때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이지요. 때론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면 잠시 그 역할을 누군가 대신할 수는 있겠지만 혼자 다 감당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한 몸, 한 성령, 한 믿음을 강조하는 것이겠지요. 주어진 역할을 잘 감당하며 하나 되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허락하여 주소서.
이 경우 목사
미국에는 압도적인 크기와 수명을 가지고 있는 레드우드라는 나무가 있습니다. 레드우드는 평균높이가 100미터 정도가 되며, 아파트 30층 높이를 훌쩍 넘게까지 자라는 나무입니다. 또한 레드우드는 평균 수령이 500년이 넘고 오래된 개체는 2000년 정도까지 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키가 크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레드우드는 서부개척 당시 내구성이 좋고 썩지 않는 장점을 가진 좋은 목재로 무분별하게 벌목이 자행되었습니다. 결국 5%정도만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레드우드 국립공원 및 주립공원을 지정해 엄격히 관리하고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작은 규모의 레드우드 공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세쿼이아 공원처럼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하늘 높이 솟아오른 레드우드의 숲을 거닐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이때 한분의 설명이 기억에 남습니다. 레드우드는 나무 끝까지 물을 올리기 위해 낮은 가지들을 스스로 꺾어 버린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레드우드는 또한 뿌리에서 흡수한 물을 꼭대기까지 완전히 보내기 어려워서 해안가에서 피어 오른 안개로부터 필요한 수분의 반 정도를 잎으로 직접 흡수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높은 키에 비해 낮은 뿌리의 깊이(약 2-3미터)는 사방으로 수십 미터씩을 뻗어 주변의 레드우드들의 뿌리와 그물망처럼 얽혀 강한 태풍에도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레드우드는 생존을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남았습니다. 살기 위해 가지를 꺾어 내기도 하고, 살기 위해 뿌리를 내어주고 다른 뿌리에 의지하기도 하고, 뿌리가 할 일을 잎을 대신해 사용하기도 합니다.
우리 앞에는 늘 어려움이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늘 시험하시는 듯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우리가 당한 것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교회, 우리 가정 가운데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늘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다면 극복할 수 있는 방법도 있겠지요. 가지를 꺾어내고, 부리를 대신해 잎을 사용하며, 서로를 의지해 바람을 견뎌내는 레드우드의 생존법이 우리의 눈을 밝혀줄 수 있을까요?
함께 말씀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이 열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교회의 각 사역팀과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가정들이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감사하며 찬송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삶에 응원을 보냅니다.
이 경우 목사
교회를 향하는 차 안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게 되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특별히 하늘 가득 구름이 드리운 상태에서의 일출은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심어줍니다. 왜 일출을 보게 되면 울컥하는 느낌을 받게 될까요? 무엇인가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기운을 느끼게 됩니다.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아주 작은 내 모습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크심을 확인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둠 속에서 멈추었던 삶에 대한 희망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 이제 다시 시작하자는 새로운 시작을 가리키는 의미로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른 새벽이 좋습니다.
해가 뜨게 되면 어두웠던 기운들이 조금씩 사라져 갑니다. 새벽에 내린 이슬들이 반짝 빛을 내기도 합니다. 닫혔던 꽃봉우리들이 활짝 열립니다. 밤새 잠들었던 생명들이 기지개를 펴게 됩니다.
매일 새롭게 시작되는 하루를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해야 할 일도, 우리의 하지 못했던 일도, 우리의 망쳤던 기분도, 밤새 눌려 있던 마음도 모두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아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아리조나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언제나 밝은 날씨입니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이 뜨거움으로 다가오는 잠깐의 시기를 제외한다면 아리조나는 미국 땅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예배당에서 새벽기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함께 찬양하며, 함께 기도하며, 함께 식사하며, 함께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형제자매들이 있다는 것에 또한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음에도 감사드립니다. 몸이 불편함에도 서로를 염려하고, 힘이 되어 주시는 분들이 함께한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심에도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기도하라는 제목을 주심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암 치료를 위해 기도하는 집사님, 비즈니스의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 집사님, 앞으로의 진로를 놓고 기도하는 집사님, 여러 가지 당면한 문제들의 지혜를 구하시는 집사님. 우리가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 주시고, 응답해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찬양과 감사가 끊이지 않는 성도의 삶들이 되게 하소서.
이 경우 목사
지난 주에 나바호 지역의 선교센터를 보수하기 위해 뉴저지에서 선배 목사님이 다녀가셨습니다. 매년 여름이 되면 나바호 원주민의 어린이들을 위해 여름학교 사역을 진행합니다. 원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악한 습관들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술과 도박, 음란한 문화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 모습에 충격을 받은 선교사님이 우리 교단과 협력사업으로 여름학교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아야 악습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아이들에게 영어와 수학을 가르쳤습니다. 물론 성경과 각종 활동도 병행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해 여름학교 장소를 옮겼고, 센터에 교실을 만들기 위해 목사님이 다녀가셨습니다.
일을 마친 후 조금 일찍 내려오셔서 함께 식사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사실 나바호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이 많이 지치신 상태입니다. 십여 년간 사역을 해 오는데 이들에게서 변화된 모습을 찾을 수가 없어서 실망이 크다고 하십니다. 선교사님의 원주민들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십니다. 원주민을 향한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님의 영적, 육적인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식사 후에 뉴저지에서 오신 목사님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은퇴한 이후에 자신이 가진 탤런트를 가지고 건축으로 사역을 계속 이어오시는 목사님이십니다. 목사님이 전해 주시는 말씀은 이민 목회를 하는 저에게는 물론이고, 선교사님에게도 지치고 힘들 때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간단합니다. “기도해야지요.”하시는 목사님 음성에 확신이 가득합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지쳐 있을 때에는 기도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입이 열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기도해야 한다는 것조차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입이 열리지 않으면, 주기도문이라도 해야지요. 사도신경이라도 해야지요.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있는 것이 가장 빠른 회복의 길입니다.” 공항에 목사님을 내려드리고 돌아오는 길 내내 제 귓가를 계속해서 울리는 말은 목사님의 “기도해야지요”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경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