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 한 편의 부고를 받았습니다.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장례일정을 잘 마쳤다는 소식을 받았습니다. 누구나 때가 되면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나이가 많이 들어 이제는 주님이 부르시는 때를 기다린다고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아픈 질병 때문에 죽음을 기다리는 분도 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는 분도 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든 죽음이라는 것이 우리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편안함보다는 두려움을 전해줍니다. 죽음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특별한 상황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아픔, 아쉬움, 슬픔, 고통, 두려움 등을 전합니다.
모든 사람이 죽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생명이 가장 귀하게 느껴집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이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들이 있습니다. 정말 이 땅에서의 삶에 만족함을 느끼고 죽음을 편안하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의 죽음으로 많은 사람들의 기쁨이 될 수 있다고 느낄 때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신 예수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죽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이 우리에게는 끝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주셨고, 우리도 생명 있는 알곡으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우리에게 새로운 소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활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허락하셨습니다. 영원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 저와 여러분은 정말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다시 사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영원히, 영원토록...
이 경우 목사
해바라기의 앞의 해를 주님으로 바꾸어 주님 바라기, 주바라기 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사무실 옆 화단에 여러 가지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가장 키가 크고 꽃이 많이 핀 화초가 해바라기입니다. 이미 꽃이 핀 해바라기는 아침 햇살을 향해 활짝 웃고 있습니다. 아직 피지 않은 해바라기 꽃봉오리조차 햇살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섰습니다. 눈이 부셔 눈을 뜨지 못하고 눈을 감고 있지만 따뜻한 햇볕과 함께 붉은 기운이 감은 눈 위로 쏘아져 들어옵니다. 온몸에 햇볕의 따사함을 느끼며 이래서 해바라기가 태양을 향해 활짝 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해바라기에 비밀이 있습니다. 해바라기가 꽃이 피기 전까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동쪽에서부터 서쪽까지 해를 따라 움직입니다. 성장에 필요한 옥신이라는 성분을 좇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꽃이 활짝 핀 이후에는 그 꽃을 동쪽만을 향해 있다고 합니다. 떠오르는 해를 정면으로 받아 꽃과 주변의 온도를 높이기 위함 입니다. 꽃과 주변의 온도를 높여 벌과 나비 등의 곤충들이 많이 찾아오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로 꽃가루를 옮기며 번식하게 되는 것이지요.
꽃이 피기 전까지의 해바라기는 옥신이라는 성장 호르몬을 얻기 위해 하루 종일 해를 좇지만, 꽃이 핀 이후에는 자신의 사명을 위해 오직 동쪽만을 바라본다는 것이 더욱 우리가 주님 바라기가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늘 연약하고 부족합니다. 주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언제나 주님의 말씀과 주님이 주시는 능력을 힘입어 자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성숙해서는 주님께 받은 사랑을 나누고, 사명을 나누며 믿음의 열매를 맺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오직 주님만을 바라며, 성숙한 믿음의 삶으로 나아 갈 때에 주님께 받은 사랑으로, 주님께 받은 능력을 나누며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드리셨습니다. 고난주간 동안 주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우리에게 주신 그 크신 사랑을 나누기까지 자라갈 수 있는 성도의 삶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경우 목사
다람쥐 챗바퀴 돌 듯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삶이 그렇습니다. 특별한 여행, 외출이 있지 않고는 늘 한결같습니다. 매일 변함없는 아침을 맞이하고 매일 만나는 사람들, 또 매일 하는 일들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마냥 제자리인 듯한 삶인데 지나 보면 정말 많은 것이 변해 있습니다. 늘 어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아이들이 어느덧 성장해서 자기 살길을 찾아 나섭니다. 얼굴의 주름이 어느덧 가득합니다.
사무실 옆 좁은 화단에 꽃씨를 많이 뿌린 탓인지 빼곡하게 무엇인가가 올라옵니다. 이제는 제법 많이 자라 올라서 무슨 꽃이 필 것인지 상상이 되기도 합니다. 제일 먼저 코스모스가 피었습니다. 해바라기가 높이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먼저 피었던 꽃이 집니다. 그리고 새로운 꽃이 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연한 분홍 코스모스가 피었다 지고, 진한 분홍의 코스모스가 피었습니다. 간혹 노란 꽃이 보이기도 합니다. 만발했던 복숭아꽃이 지고 싱그러움을 간직한 잎이 피어납니다. 레몬과 오렌지 나무에서도 꽃 봉우리가 맺었습니다. 언젠가 꽃이 피고 또 지며 열매가 맺어지겠지요.
작년에 사무실에 지난 교회의 단체 사진들을 붙여 놓았습니다. 지난 시간들을 기억하며 감사하며, 더욱 힘을 내기 위한 저만의 방법이라 할까요.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어떻게 우리 교회를 이끌어 오셨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또 그때마다 어려운 만큼 은혜도 컸다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꽃이 피면 지는 때가 있고, 꽃이 지고 나면 열매를 맺게 되는 일련의 과정들이 있듯이, 교회도 많은 어려움 속에 좋았던 시간들, 힘들었던 시간들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지내왔습니다. 이제는 제법 그 흐름을 이해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 이해와는 별개로 하나님의 뜻을 찾는 일은 계속 되어져야 하는 일입니다. 꽃이 피는 때인지 지는 때인지, 잎이 피는 때인지 지는 때인지, 열매가 맺는 때인지, 거두어야 하는 때인지. 우리 삶도 마찬가지이고,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정확히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정확한 때에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 경우 목사
어느 날 갑자기 꼬리뼈가 견딜 수 없이 아팠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까 했지만 계속 느껴지는 고통에 제대로 걷지를 못했습니다. 사람 몸이 참 신비롭습니다. 평상시에는 있는 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꼬리뼌데 이 꼬리뼈가 아프니까 제대로 앉지도, 눕지도, 일어나지도 못하게 됩니다. 얼마나 많이 불편한지 모릅니다.
때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질병이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간이며, 위며, 뇌 등 중요한 부위의 질병들도 있지만,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병명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픈 건 다 매한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마음이 좁아집니다. 육신의 불편함이 우리의 정신적인 삶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질병에 대처하는 방법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운동하지 않아 생기는 질병이라 합니다. 그래서 운동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 의사가 한 말에 많이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운동 안해서 생긴 병이라고 바로 운동을 시작하면 더 증상이 심해집니다. 지금 증상이 깨끗이 치유된 후에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었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을 치료해야 완전한 치료가 됩니다. 그러나 그 치료도 처음부터 차근차근 진행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이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 또한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 근본적인 방법은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기도하고, 찬양하며, 말씀을 읽으며 꾸준히 경건의 삶을 통해 내 삶을 돌아보고, 정비하고, 나아가는 일입니다.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행동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는 이러한 경건 생활을 방해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치관, 생각, 삶의 습관들이 방해를 합니다. 이런 모든 것들을 그대로 두고 기도하며, 찬송한다고 해도 모래성을 쌓은 것과 같습니다. 우리 삶에 방해가 되는 것들이 우리를 게으르게, 잘못판단하게, 세상의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도록 유도합니다. 우리의 옛습관을 먼저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하게, 신실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해서 말입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건강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경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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